꼰대가 안되는 법도 말고, 꼰대 판별법 중 말초적인 그런 것 말고… 꼰대가 무엇이길래 꼰대와는 말이 안통한다고 하는 것일까? 소통을 방해하는 꼰대질의 형태는 어떤것일까? 꼰대의 잔소리가 지식과 경험전달에 효과적인가?  이런 것을 여러 책에서 찾아보고 정리 해보려고 했다.꼰대란?

‘꼰대’라고 하면 대충 무엇인지 알기는 하겠는데, 풀어서 무엇이냐고 하면 딱히 설명은 어렵다. 이곳 저곳 찾아보니 예전부터 어른이나 선생님을 지칭하는 은어/비속어로 부터 왔다고 하는데, 명망(?)있는 위키피디아와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이제는 ‘꼰대질’과 더불어 거의 표준어 반열에 올라섰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직은 품격(?)있는 단어의 지위는 얻지 못했는지 국어사전이나 위키피디아 등에서는 짧게만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관심 갖고 검색해보면 다양하기도 하고 극단적이기도 한 꼰대에 대한 많은 글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나무위키의 ‘꼰대’편(링크) 을 읽다보면 관련 내용의 정리 수준이 상당하다.

나무위키에서는 크게 세가지를 ‘꼰대가 되는 이유’로 들고 있다.

  • 가치관의 변화속에서 낮아지는 자존감 : 변화되는 시대의 가치관에 적응하기 보다, 자기가 ‘나름 힘들여’ 적응하고 만든 개똥 철학을 지키고 ‘가치관에 맞춰’라고 잔소리와 강요를 통해서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서. (하지만 꼰대 스스로는 ‘다 걱정되서 그런 말을 하는 거다’ 라고 한다.)
  • 피해의식과 보상심리 : ‘나도 그 짬밥때는 그랬다’ 라는 심리로써, ‘나름 힘들었음’이 억울해서 ‘이젠 너희들도 당해봐라.’ (내가 겪고 받아들인 것은 일종의 법이고 너도, 시간이 지난 지금도 예외없이 변함없이 지켜야 한다. )
  • 권위와 권한의 불일치 : 대부분 권한/권력이 많은 높은 지위임에도 주변으로 부터 인정받지 못하거나, 인정해도 권력행사의 욕구나 끝이 없어서. (완장을 찼는데 왜 내 말 안들어!? = 나도 좀 컸는데 왜 자꾸 잔소리야?)

꼰대가 ‘꼰대’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누구에게는 꼰대일 수 있지만 또 누군가에는 아주 좋은 멘토(*1)이거나 리더일 수도 있다. 그 증거로 군대 직속 고참, 회사의 내 팀 선배, 담임 선생님, 부모님등 꼰대는 자주 소통하는 사람들 중에서 발견(아니 당신이 그렇게 낙인을 찍었다)된다.  반면에소통이 적은 부대장님, 옆 부서 팀장님, 교감 선생님, 옆집 아줌마를 당신이 꼰대라고 부를 경우는 드물다.

*1. 직접적인 소통 관계가 적은 상태에서, ‘너는 너고 나는 나고’란 자세로 별 강요없이 잔소리를 우아하게 포장해서 하는 사람. 같은 잔소리라도 멘토가 하면 가까운 부모나 선생님의 이야기보다 더 잘 믿고 따른다.

기억 남게 짧은, 꼰대에 대한 정의

‘꼰대’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몸의 나이보다 마음이 폭삭 늙어버린 사람’이라고 하고싶다. 여기서 ‘늙어버린’의 의미는 – 늙음이 죄도 아니고 자연스런 과정이니 폄훼할 생각은 없는데, 그저 몸이 늙으면 자연스럽게 그러하듯 – ‘경직’되고, 몇 가지에 특화 적응되어 ‘하던 것만’ 잘 하고, 또 그게 편하니 계속 ‘고집’하고, 그러니 서로 소통도 막혀 ‘불통’이 되고…뭐 이런거다. 그 고집이 자기를 넘어 주변사람들에게 까지 강요가 되면 드디어 ‘꼰대’라고 불려지게 된다.

‘꼰대’에 대해 이렇게  간단히 정의하니 더 많은 꼰대질들이 보이더라.

전문지식, 경험량, 돈과 권력이 만드는 꼰대들

나이와 상관없이, 어리더라도 특정 영역에 대해 편향된 자만심이 넘치면 꼰대질이 나오고, 계속 반복되면 꼰대가 된다. 흔히 전문가나 특정 종교 또는 이론에 빠져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다음 글(출처 : ‘공부논쟁’에서 – 공부논쟁 / 김대식, 김두식 공저 (C) 창비 )을 읽어보자. 정치적 성향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니 오해마시길 바란다.

(진보와 보수는 생각하지 말고) 위 글에서 말하는 ‘엘리트주의자(새롭거나 깊은 지식을 갖췄으나 경직된 생각과 우월 주의를 가진 자)’는 꼰대의 특성을 잘 갖추고 있다. 서로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고, 시대 흐름이나 상대방의 처지에 대한 이해도 없이, 맘대로 잣대를 정하고 대뜸 가르쳐 상대방을 고쳐놓겠다는 전형적인 꼰대질 중 하나다.

흔히 자칭 전문가, 선배, 유경험자의 꼰대질은 이런 유형이다. 대뜸 ‘내가 해봐서 아는데, 당신은 틀렸다. 내가 보기에 안쓰러워 알려줄테니 시키는대로 해봐라. ( = 머리는 폼으로 달고 있는것이오? 한 수 알려주랴? 고맙지?  라는 뜻)’… 라고 하면 당신은 꼰대질을 당한거다.

그리고 꼰대질에 대한 반응을 보면 스스로 꼰대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다.  마음이 젊고 유연한 어른들은 어린 사람의 꼰대질에도 너그럽게 받아넘기고, 특히 전문가의 꼰대질에서 취할 것은 취해서 도움을 얻는다. 그러나 꼰대가 꼰대질을 당하면, 특히 어리거나 만만하게 봐왔던 사람에게서 들으면 ‘감히~’, ‘어디서~’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난리가 난다.

[이런 모습 흔하지 않아? 도움일까 꼰대질일까? – 글만 봐서는 알 수 없더라. 그만큼 모호하다.]

>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하는 자녀나 손주 : “할아버지 (아버지)는 어떻게 스마트폰을 그렇게 써요? 제가 알려드릴께요~ 자~ 보세요. 이렇게 저렇게…”

> 나이를 허투로 먹지 않은 어른 : “하 그렇구나! 좋은 것을 배웠구나. 그럼 이것도 좀 해주렴~(*2)”

*2. 지혜로운 어르신들은 일 시키는 법을 안다. 아는척 하는 똑똑이들은 얼떨결에 그 일을 한다.

‘꼰대’가 과거 일부 어르신과 선생님을 지칭하는 은어로 부터 시작한 배경에는 세대차가 가장 컸었겠지만, 요즘은 지식과 정보의 격차, 학력이나 출신에 대한 엘리트주의 뿐만 아니라 빈부격차, 계약에서 갑/을 관계, 정치성향, 종교등 모든 것들이 유사 꼰대질로 확대되는 것 같다. 방송에서도 자주 듣게 되는 ‘갑질’이나 ‘진상고객’이라는 말들은 ‘내가 돈으로 완장 찼는데 왜 내 말 안들어!’와 같은 꼰대질의 한 유형이지 않을까~싶다.

결국 소통을 방해하는 것은 ‘시키는대로 해, 내가 맞아. 뭔 말이 많아’ 라는,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에 있는 것 같다.

 

조언/멘토링/피드백 vs 꼰대의 잔소리

‘꼰대’라는 말이 스승님이나 어르신의 ‘곰방대’로 부터 왔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리고 흔히 꼰대스러움은 ‘잔소리’로 나타난다. 그래서 예전부터 잔소리는 역시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1등이었나 보다.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아마 잔소리가 아무리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 명령하는 위와 따라야할 아래를 자꾸 확인시켜주니 반발심도 생기는데다가…
  • (반박하기 힘든) 맞는 말이긴 한데 내가 하기 싫은 것, 잘 안되는 것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니 자존심 상하고…
  • 단정적으로 ‘넌 맨날 그러니~’ 라며 지겹게도 반복되니…

화가 안나면 비정상일거다. 이러니 아예 소통할 수 있는 기회인 ‘마주침’을 피하게 된다. ‘만남’이 아니고 ‘맞닥트림’이 되버리는 거다.

조언/충고, 피드백, 멘토링 같은 것과 꼰대질의 한 모습인 잔소리와의 차이는 종이 한두 장 정도의 차이인것 같은데,  그 한 장은 ‘(내가 우월하니) 상대방이 내 뜻을 따라 움직여야만 한다‘는 마음이 있냐 없냐이고, 나머지는 ‘상대방의 상황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이 든다. 뭐 어렵게 설명할 필요 없이 구별법은 간단하다. 듣기에 괜찮고 받아들여지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면 모두 ‘꼰대질’이고 ‘잔소리’가 된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서로 좋고, 집안이나 조직이나 소통이 잘 되려면 잔소리 꼰대질로 안 느껴져야 할 것 같은데, 아래 글( ‘마흔, 논어를 읽어야할 시간 2’ / 신정근 (C) 21세기북스) 을 흩어보자. 참고로 ‘백어’는 공자의 자식이다.

 

 

거꾸로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선생이나 리더가 아무말 않고 ‘묵언 수행’을 한다면 또 책임을 회피하는 것일 게다. 만약 ‘말이 통해야 말을 하죠’ 라고 한다면 둘 중 하나는 왕 꼰대임이 분명하다.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공자’나 ‘맹자’라도 말만 그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혹시, 공자의 일화를 보면…‘우연을 가장해서’ 필요한 때에 넌지시 힌트만을 주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가르쳐서 고쳐놓겠다’ 는 통하는가? 

인류공동체, 조직, 가족의 영속성을 위해서 과거의 성공과 실패경험을 지식과 지혜로 전해 주려고, 그래서 미리 실패를 예방하고 경험을 발판삼아서 좀 더 발전된 길을 찾도록 잔소리를 하는데 있어서 그 열의가 강해서 꼰대가 된게 아니었을까? (아무리 결국은 자기가 체험해봐야 제대로 배운다고 생각한다. – ‘Let it be’가 아마도 그것을 나타낸 말인 듯 하다.)

이렇게 바라보면 ‘꼰대’가 그렇게 꼭 피해야할 사람들이고, 없애야할 사람들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앞에서 맹자나 공자의 이야기 처럼, 모멸감 주지 않고 타이밍 맞춰 도움을 주는 형태로 조금만 바뀌면 되지 않을까?  지금은 꼰대스러워도 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고…또는 그렇게 된 사람들을 ‘지혜로운 꼰대‘라고 좀 구별을 해 놓아보자. 또 상대적으로 반대에 있는, 무턱대고 고압적 자세와 모멸감을 슬쩍 얹어, 오직 자신의 낮은 자존심의 빈곳을 메꾸기 위해 말만 해대는  ‘못난 꼰대’ 도 구별을 해 놓자.

구태여 ‘지혜로운 꼰대’를 구별한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파는 교사나 강사와는 다르게 사회/조직의 발전을 위한 책임감과, (참 어렵지만) 사람을 바꿔놓겠다라는 열의 때문에 정말 큰일을  해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국…아래 글( ‘망각의 자유’ / 강신주 (C) 갈라파고스) 에서 소개하는 ‘들뢰즈’라는 사람의 말처럼…

 ‘나처럼 해봐라’, ‘나 했듯이 해봐라’, ‘못한다고? 노력이 부족해서다’ 라고 잔소리만하기 보다는 ‘나와 함께 해보자’라는 태도를 통해서 ‘꼰대’가 아닌 ‘스승’이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정리하다보니, 별 시덥쟎은 탐구생활을 한 것 같기도 한데, 나이를 먹어서 몸이 늙건 아직 젋건, 유연하고 건강한 마음을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 시간이 흘러 많이 알 수록 많이 경험할 수록 고집이 늘기 보다 더 유연해지길…

“배움의 궁극적 목적은 좀 더 유연한 삶을 사는 것이다. 자신의 고집에 부딪혀 새로운 지식이 자리를 잃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 도미니크 로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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