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만나 볼 책은 TV에서 종종 접하게 되어 상당히 알려진 분의 책입니다. 저자 최진석 교수는 아래 동영상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으로도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book_img01

(↑ 사진 보시면 아실겁니다. 최진석 교수/저자)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book_img02앞서 소개한 최진석 교수의 EBS ‘인문학 특강’에서 강연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라서, 동양고전인 ‘노자’를 다루었다고 해도, 마치 강연을 듣는 듯 해서 쉽게 읽히는 편입니다.

 

그래도 ‘노자’ 또는 ‘도덕경’의 내용이 쉽지만은 않아서, 상당히 정신을 차리고 읽어나가야 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여럿 읽어본 ‘도덕경’이나 ‘노자’에 대한 책들보다는 훨씬 납득이 쉬웠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한자어를 그냥 직역하거나 뭔가 고차원적인 냄새를 풍기면서(?) 어려운 철학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역사적 배경이나 시대적으로 우세했던 사상들을 함께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한단계 한단계 풀어나갔기 때문이겠습니다.

 

접어 두었던 페이지들

이 책을 읽어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또는 들어왔던 해석이나 의견들과 다른 부분들 중심으로 간단하게 글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보통 ‘군자는 조화롭되 다양성을 인정하여 각기 다르고, 소인은 다 비슷하고 같기는 하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라고 해석되는 ‘논어’-공자의 한 구절입니다. (‘노자’에 대한 책인데, 시대상을 다루면서 논어의 글귀도 종종 등장합니다.)

전에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이란 책에서는 이렇게 내용을 바라보더랬습니다. 바로 위와 같이 보통 접하게되는 해석과 같기는 한데, 이렇습니다.

공자 왈 “자율적인 인간은 보편의 관점에 서므로, 당파성을 지니지 않는다.
반면 작은 사람들은 당파성을 지니지 보편의 관점에 서지 않는다.”라는 의미와 같이 해석할 수 있다.
군자와 소인의 구별을 하며, 군자는 좋고 소인은 나쁘다는 고질적 관점이 있다.
누구라도 소인의 측면을 가진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것은 없앨 수 없는 개인의 단점이기도 하며, 사람을 모두 다르게 만들어 주는 장단점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을 무시하고 사람의 약점을 잡아 끝까지 소인 취급하고 공격하는 것은 도덕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한번의 실수로 학교나 회사에서 회복 불가능한 무능력자로 모는 것이다.
군자와 소인의 구별은 나를 선의 화신으로 만들고 타자를 악의 화신으로 만들어서 배제의 논리를 작동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그것의 구별은 사람의 차이를 확인하고서 좀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는 변화를 일구어내는 데 목적이 있다.
소인은 친한 사람끼리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배제한다.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기전에 내 편인가 아닌가? 내 기준 잣대에 맞는가 아닌가? 라는 단순하며 명쾌한(?) 기준을 하나로 모든 것을 재단한다.
군자라고 함께 어울리는 사람이 없겠는가? 아니다. 군자는 어울리는 사람에 빠지지 않고 어떠한 사람이라도 동일하게 바라보는 자유로운 관점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공자의 해석을 따르되, 종종 성인군자(?)와 소인배를 구분하는 격으로 쓰인 ‘군자’와 ‘소인’의 구분마저도 어쩌면 ‘군자스럽지 못한 것 아니냐?’ 라는 의미를 얹어서 해석한 듯 합니다. 그래도 큰 맥락에서 해석의 관점은 같아 보입니다.전에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이란 책에서는 이렇게 내용을 바라보더랬습니다.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에서는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위 내용을 아래처럼 해석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1차적인 번역은 비슷합니다만, 최종 해석은 상당히 다릅니다.

“훌륭한 사람(군자)은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는 조화를 도모하지, 모두 유니폼을 입혀놓은 것 처럼 똑 같게 하려 하지 않는데, 좀 부족한 사람(소인)은 유니폼을 입혀 놓은 것 처럼 똑 같게 하려 하지, 차이를 인정하는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공자가 활동했던 시대에서 지배계급의 통치논리를 표방해왔던 여러 사상가들, 물론 공자도 포함해서 그들의 발언을 해석하면 이렇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 군자는 계급적 구도(지배-피지배)에서 지배계층을 차지하는 쪽이다.
– 그들은 현재의 (공평/평등하지 않은) 구도에서 더 조화롭게, 그러니까 계급이 다르니까 다르게 부여된 사명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전체적인 사회가 조화롭게 돌아간다.
– 그럼에도, 계급차이 없이 평등으로 같아지려고 한다면 조화롭게 되지 못할 것이다.
…라는 가진자, 지배계급인 ‘군자’들의 논리를 펼친 것으로 봐야한다.
이에 대하여 소인(피지배계층)은 이렇게 주장하였다.
– 차이를 인정하는 조화라는 것에는 계급적 구분과 지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속내가 숨어있다.
– 이런 계급논리 때문에 계속 피해를 받아왔으나, (당시 피지배계급의 상업 발전과 철기의 발전으로 부를 축적해서 세력이 성장하던 때였음) 이제 어느정도 부를 축적하였으니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겠다.

이렇게 듣고 나니, 왠지 공자의 ‘논어’ 한구절이 참 다르게도 이해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철기의 발전과 상업의 발전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세력의 움직임에 대해서 언급하며, 이 흐름이 이어져 진시황의 등장까지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 책의 제목에 ‘생각하는 힘…’이 포함되어 있거든요. 꼭 ‘노자’이야기만 하는 책은 아니라서… )

그런데, 요즘은 다른가

저자는 요즘 자주 접하게되는 계급의 동요, 정치구조의 한계, 세계관의 변화등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당시에는 ‘철기’가 큰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아무래도 맞는 것 같습니다. 몇 해전 이집트의 독재정권의 붕괴에 트위터의 역할이 컸었지요.  그리고 세대간 격차, 빈부차이, 실업률, 정치불신과 기존 권위의 하락, 이슈를 이끄는 신조어들도 그렇고요.
특히 세월호사건, 메르스사태, 그리고 요즘의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온라인상의 네티즌 수사대의 역할부터 해서,  기존 권위적 뉴스의 채널이 아닌 그 이면에 흐르는 수 많은 기사들, 의혹들을 연결하는 추리들과 정보의 파급력을 보면 확실히 달라진 시대임을 느낍니다.

(다시 돌아와서) 변화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다를 수는 있겠지만 결국 시대의 사상과 역사는 끊임 없이 변화해나아가는데 우리의 생각은 왜 누군가 만들어 놓은 권위적 ‘스탠다드’에 맞추려고만 하는가? 에 대해 의문을 던집니다.

권력화된 이데올로기

인간사회에서 보편적 가치의 기준들은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르겠지만 물론 당연히 다수에게 받아들여진 것이 우위를 점하게 될텐데요.

공자는 ‘논어’-‘안연’편에서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설명하면서, “예가 아닌 것은 보지 말고 예가 아닌 것은 듣지 말고 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합니다. 요점은 (미성숙한 자아로서 가지는 자신의) 욕망이나 감정을 이겨내고 사회적 법칙인 예(禮)를 따르라는 말입니다.
이 ‘예’는 전체 사회가 모두 따라야 하는 보편적인 기준입니다. 이 기준을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 공자가 건설하려고 했던 ‘인간의 길’

를 저자는 인용하면서, 추가로 ‘미셸푸코’의 “본질이나 중심을 기반으로 형성된 철학에서는, 그 것이 기준이 되어 결국 이사회를 구분하고, 배제하며 억합하는 권력으로 군림하게 된다”라는 언급도 함께 덧 붙여주었습니다.

‘노자’의 주장도 이와 다르지 않은 점이,

天下皆知美之爲美斯惡已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알면, 이는 추하다.
皆知善之爲善斯不善已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알면, 이는 좋지 않다.

와 같이 ‘공자’가 주장하는 ‘대 통합적 스탠다드’를 옳지 않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비록 그 기준이 선(善)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죠.

삐뚤어질테다

이렇게 책의 내용이나 저자의 설명부분을 엮어나가니 마치 ‘삐뚤어져라’라고만 이야기 한 것 같은데요, 책과 저자의 주장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그저 마냥 삐뚤어질테다는 아니구요. – 수습 중 –

‘자기다움’과 ‘자신의 생각으로 깨어 있으라’라는 의견으로 이해하여 주시면 딱 적당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노자는 인위적인 잣대를 기준으로 들이대는 것보다는 자연의 흐름과 유사하게 있는 그대로의, 투명한, 객관성을 중심으로 자신의 정치관을 펼쳤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노자도 당시 시대흐름에 맞게 ‘어떻게 정치를 할 것인가’와 ‘어떻게 권력을 잡을 것인가’를 많이 상당히 다룹니다.

책 3분의 1쯤 부터는 ‘도덕경’을 해설하면서 ‘노자’의 생각들을 풀어나가며. 불교나 주역도 흩고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역사와 철학등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분은 흥미롭게 읽어나가실 수 있는 책이니 시간내어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기억남는 부분을 붙입니다. 특히 요즘 뉴스를 보면 더욱 와 닿네요.

使夫智者不敢爲也

저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무엇을 하려고 하지 못하게 한다(하라).
> 짜집기 해설: 똑똑하다고 강하게 믿고 자처하는 경우는, 대부분 우물안 개구리처럼 한 면만 알고 이면과 모호한 경계에서는 어찌할 바를 (겪어본적도 본적도 없어) 모르는 자들이니, 그들이 판치면 세상이 거칠고 (해결 없이)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시스템을 (견제하고 감독할 수 있게) 만들라.

 

Post filed under BizSpring Blog, 비즈스프링 이야기, 사람과 책 이야기 and tagged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