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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국회결정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약간은 연관되어 보이는 텍스트들로 찾아보았습니다.

독후감 책은 ‘한비자의 관계술’입니다. ‘관계술’이라 하면 서점에서 가끔 보이듯 사람과의 관계를 성공기법의 영역으로만 치부하여 여러 잡다한 기술, 매너나 심지어 독심술을 마스터하면 일종의 관계를 개선 할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 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풀어쓴 대상의 원전이 ‘한비자’이기 때문에 조직, 권력, 처신, 이해득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바꿔 말하면 개인을 위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조직을 위한 규범계발서(?)의 영역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내용에서는 ‘군자’나 ‘신하’가 많이 등장하는데요, 각각은 조직을 대표하거나 상대적으로 큰 권한과 관리의 책임을 가진 자와 조직의 구성원(또는 조직 내 특정 이익을 추구하는 임의의 집단을 대표하는 자)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집단(국가나 조직들)이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겠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해득실의 관계로 바라보기

한비자는 조직이나 집단 내 관계를 이해득실(利害得失 – 이로움과 해로움, 얻음과 잃음)을 기본으로 한 관계로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직위가 충성을 해야 하는 자리이거나 누군가의 헌신을 요구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서로가 얻는 이익이 있어서 충성을 하는 것이고, 덕을 베푸는 것이고 의를 지킨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유교적 정치 관념에서 강조되었던 임금과 신하 사이에 있어야 할 의(義), 윗 사람의 덕(德), 아랫 사람의 충(忠)만을 내세우고 이득이 없으면 말만 앞서고 행하는 자가 없게 되거나, 의리와 덕행과 충성에 대한 보상을 챙기기 위해 비리, 꼼수가 난무하거나, 보다 대세에 맞는 명분(?)을 등에 없고 새로운 리더를 세울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다룬 것이 ‘한비자’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우리가 ‘이해득실’이라고 하면 어떤 협상이나 거래에서의 금전적 이익과 손해가 먼저 떠올리고는 합니다만, 한비자가 말하는 이해득실은 그 종류와 관찰의 범위를 다양하고 넓게 봤을 때 이야기들의 맥락을 이해 하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익의 종류를 다양하게 보자면… 권력을 먼저 얻고 그 것을 이용해서 경제적 이득도 얻기, 명성을 먼저 얻고 권력으로 확대 시키기, 연민을 얻어내고 책임을 경감하기, 관심 없거나 모르는 척 하여 싸움에 끼어들지 않아 손실을 예방하기 등 다양한 가치의 형태나 목표들을 이해득실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범위를 넓힌다는 것은 이익의 관점을 작게는 너와 나로부터 시작해서 우리와 그들 그리고 국가나 민족까지 넓혀가면서 살펴보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기 위해 잠시 간단한 상황을 설명하겠습니다. 우리가 국가 대 국가의 스포츠나 경제 혹은 군사적 경쟁상황에서 대결 구도에 몰입을 하게 되면, 평소 이타적이거나 자애로운 사람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상당히 상대 편에게 입에 담기에 험한 공격적 언사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기도 하는데요, 이런 현상은 주변의 사람이 나와 같은 이익을 추구하는 자라는 믿음이 확실하여 생각의 차이에 대한 표현을 조심하는 것이 사라지고 좀 더 과격/극단적이 표현을 통해 자기편의 결속력을 강화하거나 다시 확인하고자 하는 권력과 이익에 대한 동물적 본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표출되는 주제와 범위를 다양하게 – 개인이 선호하는 프로야구 팀인 경우에는 어느 범위수준, 어떤 집단에서 위와 같은 행동이 드러나는가?, 종교적 믿음, 정치적 성향인 경우에는 어떤가? 국가나 민족간 갈등에서는? -  관찰해 보면, 그 사람이나 집단이 무엇이 상식화된 대세라고 믿는지, 또는 어떤 집단의 범위나 규모 수준까지를 자신이 소속되거나 이익을 같이 하는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이 관점들을 가지고 살펴보면, 조직이 아니라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에 쉽게 빠지는 이유, 일부러 타 집단을 적으로 규정하고 그 뉘앙스를 리더가 먼저 흘리는 이유, 다양성을 존중하고 경청한다고 하면서도 핵심적인 이견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되는 이유를 유추해보기 쉬워 집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으니 본문의 텍스트는 몇 가지만 살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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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익을 위한 간사함과 공익을 위한 충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세속의 말에 얽매이지 않고, 측근들의 거짓말과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으며, 간사함과 이기적인 행동을 멀리한다. (한비자의 관계술/김원중)

리더나 책임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은 해당되지 않으며 잘 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하지만, 종종 그렇지 않은 것이 바로 위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밖에서 보면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뭘 잘 못했느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까요.

그럼, ‘그렇게 뻔히 보이는 것에 속는 리더나 책임자가 있겠느냐?’ 고 반문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상하게도 리더나 책임자의 자리에 서기만 하면 잘 속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심지어 자신을 잘 속여 줄 사람을 찾고 그 들에 의지하며, 서로 만의 환상을 구축하는 것 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원숭이 집단내 권력과 아첨에 대한 관찰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사회적 관계를 구축해가며 생존하는 개체들은 어쩔 수 없이 위계와 세력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권력의 정점에 가까운 자리에 있을 수록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과 또 그 이하의 지지세력 무리들은 그들에게 유리한 정보와 논리를 끊임없이 윗쪽으로 제공하고 주장합니다.  또 반대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측근들에게 적절한 이익을 보장해줘야 하고 그들의 주장을 어느 정도 수용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한비자는 ‘충성’을 이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익 때문에 모인 것 아니냐라는 것인데요. 그러면 ‘충성’은 리더와 권력자가 믿고 싶은 대로 정보를 주고 (물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으로 필터링해서…), 권위에 대한 안정감과 개인적 자존감을 슬쩍 높여주기 위한 일련의 제스추어들의 ‘묶음’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상징으로 내세워 섬기는 동질 집단 끼리는 그로 부터 나오는 이익의 나눠 갖는 구조이기에 권력/이익 구조를  지키고 (조직/전체를 위하지 않고 자신들만을 위한 이익 활동의)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배신’과 ‘의리’를 내세워 단속합니다.

그래서 충성과 의리를 우선시하고, 배신을 운운하며 응징 하겠다고 하는 리더나 조직치고, 진짜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리더나 구성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그네들만의 서열/군대/조폭 놀이인 것이죠.

과거 박 대통령의 측근이었다가 버림받은 한 인사는 대통령이 몸종형, 돌쇠형 인사만 중용했다고 비판했다. 오직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만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중략) 대통령은 자서전(2007년 출간)에서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은 없다”고 했다. 배신은 가슴 아프지만 거기에 편집증을 갖게 되면 판단이 흐려진다. 간신과 충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색맹이 된다. 진짜 충신은 바른말을 하는 신하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아첨꾼은 반드시 충성의 반대급부를 원한다. 성에 차지 않으면 등에 칼을 꽂는다. (연합뉴스 컬럼/김종현↗)

조직을 사랑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어느 검사의 2013년 발언이 요즘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권력이 보다 강한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단기적이고 개인적인) 이익을 얻겠다가 아니라, 조금 더 전체 이익을 위해 헌신하겠다~라고 이해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뭐 개인적으로는 ‘조직을 사랑한다’ 보다는, ‘주권을 가진 국민의 열망에 따라 행동하겠다’ 였으면 어땠을까…도 생각하지만 그 분도 조직을 대표하는 자리가 아닌터라 적절한 표현이라고도 생각한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그것이 집단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권력의 실상이라면, 어떻게 그 어리석음에 빠지는 실수를 줄일 것이냐? 가 한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대답이 될 텐데요.

책임지는 자리, 리딩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면 같은 어리석은 실수에 빠지지 않기 위한 실천 지침을 아래처럼 만들어 볼 수 있겠습니다.

 

실천 지침 :

- 결정하기 전에 일부러라도 반대 주장과 논리를 확인하거나 최소한 역지사지로라도 생각해본다.

- 이 정보와 논리/프레임은 누구(들)에게 이익이 되고 누구에게 손해가 되는지를 생각한다.

- 사람에 대한 헌신과 충성을 받거나 내가 누군가(들)에게 그 것을 요구한다면, 조직을 대표하는 내가 그들에게 어떤 빚을 지게 되는가를 생각한다.

 

 

2. 충성 받는 것을 좋아하다가 빠지는 함정 – 왕자병과 공주병

- 취사(取舍)에 관한 의견이 같은데 마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드는 것이, 신하가 군주에게서 신임을 받고 총애를 받는 방법이라고 했다.

- 오랜 시일이 지나 군주의 총애가 깊어지면 큰 계책을 올려도 의심받지 않고 군주와 서로 다투며 말하여도 벌을 받지 않는다.

앞에서는 조직이나 전체를 위한 헌신이 아니라 사익을 위한 충성의 고리를 만들고, 서로간의 개인적 이익을 우선시하여 권력을 남용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그 충성의 고리를 서로간의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리더/책임자 자신의 정신적 만족감을 위해 충성을 요구하거나 당연시하다가 결국 일을 망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예시문에서 말하는 ‘취사’는 취향과 성향을 말합니다. 작게는 같은 취미를 즐기거나 좋아하는 연예인이 같다는 동질감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조금 더 확대되면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일 수도 있고,  의사결정의 방법에 대한 선호일 수도 있습니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하나씩 하나씩 맞춰 나아가다 보면, 어느덧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않은 내용과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주제의 내용까지도 크게 신임하여 믿고 맡기게 됩니다.

이 부분은 사실상 권한위임(empowerment)의 과정과 비슷해서 오해하기 쉽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일의 목적/목표/전략에 대한 공감과 이해, 그리고 지금까지 쌓은 성과나 업적이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과 리더의 개인적인 성향의 취사선택에 맞는지의 여부로 그 권한의 위임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어떻게 공사구분을 못할 수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은연 중에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잘 이해해준다고 또 실행해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고, 내가 지시/요청하는 것을 군말 없이 실행해주면 이미 나의 충실한 지지자나 하인이라고 믿고↗ 싶어지고,,  곧 이어 확신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그들의 말을 자신의 생각과 같게 취급하여 내 생각은 사라지고 그들의 생각대로만 따르며 ‘참 좋은 생각이다! 나도 그리 생각하였다!’가 일상다반사가 됩니다.  생각의 주도권을 잃고 난 후에는 보고 받은대로 승인하고, 써준대로 말하게 됩니다. 그 다음은 바로 앞에서 설명한 ‘측근들의 말만 믿고 그들의 간사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꺼리낌 없이 용인하는 단계’에 접어들겠습니다. 이 때부터는 사실과 이견을 보고하는 사람들은 ‘의심 많은 자’ 또는 ‘자신의 측근들을 공격하는 자’로, 심지어 ‘배신자’로 낙인 찍으면서 측근들을 보호하는데 급급하게 됩니다. 물론 그 측근은 요즘 흔히 듣는 ‘비선실세’가 되겠지요.

 

실천적 지침 :

- 내가 왠지 왕이나 공주/왕자 대접↗을 받는 것 같으면 의심하라. (절대 그러할 리가 없다.)

- 또 반대로 팔로워가 리더를 아이처럼 대하면서 가르치려 들거나↗,  없을 때 험담/권한침해 발언이나 행동을 하면 의심하라. (스스로 비선실세라고 착각하는 자다.)

- 편함의 여부, 취향의 여부가 아니라 목표와 일을 중심으로 함께 해야 하는 사람과 할애되는 시간을 조정한다. 리더이고 책임자라면 일부러라도 불편한 사람들을 만나고, 불편한 미팅에 참석하라.

- 믿었는데 배신을 당했다-라던가, 결국 홀로 남는구나-하는 자괴감이 들면↗, 자신이 역할과 능력이 아니라 취향에 따라 사람을 고른 것은 아닌가 의심하라.

 

 

3. 외세의 힘을 이용해서 조직을 협박하고 이익을 얻는 것

- 사방(四方)이란 신하가 나라의 재물을 사용하여 군주가 큰 나라를 섬기도록 하고, 큰 나라의 위세를 이용하여 군주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말한다.

- 위강(威强)이란 (내부 또는 외부의) 위세를 빌려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말한다.

이번에 이야기 할 내용은 집단이나 조직의 외부세력이나 외부의 대세적 명분을 이용해서, 조직을 대표하거나 책임지는 자를 협박하여 제대로 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고, 교묘히 자신의 이익과 연결시켜서 자신의 뜻이 관철되게끔 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청 나라를 등에 업은(어쩌면 청의 위협을 빨리 간파한) 신하가 임금을 협박(어쩌면 급박한 알람을 울림)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실제로는 드라마처럼 대놓고 협박하여 목숨을 재촉(?) 하기 보다는, 여러 다양한 명분과 실리와 위험을 언급하면서 무엇인가에 비용을 지출하게 만들거나 전략을 수정하게끔 만듭니다. 

만약 제대로 된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이익을 위해 세력을 이용했다면, 지출된 비용은 중간에서 빠져나가고 일감을 받은 기업은 뒤에서 무엇인가에 연결되어 돈이 흘러가고… 전략이 수정되면 어찌 귀신처럼 미리 알고 투자해 놓았는지…막대한 부를 거머쥐고…뭐 이런 것 입니다. 실제로  방산비리, 전국규모 토목공사, 부동산 개발정책 등에서 가끔 결과적으로 확인되어 끌려가는 사람들이 있죠.

이렇게 조직과 집단과 견주어 볼 때 더 강한 외부 세력을 이용하거나, 내부에서는 조직의 주요 구성요소들을 이용하여 겉으로는 명분과 전략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조직의 최고 권한을 가진 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결정하게 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 ‘사방’ 입니다.

이 ‘사방’이 예측하거나 발견하기 힘든 것은 교묘한 내외부적 정세와 논리를 바탕으로 제시된다는 것이고, 발견하고서도 어떻게 대응하기 힘든 것은 우리가 함께 탄 배에 대해서 위협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문제 제기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아래와 같은 부분에 주의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실천적 지침 단순히 참고 :

- 제안과 문제제기를 한다. 그런데 그 사람도 고민하고 선택한 의견으로써 책임을 (나누어) 지겠다가 아니라, 그저 다른 누구(고객, 팀원전체, 다른 상급자, 일반적 관례…)의 의견일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단 참고해두겠다고 하면 계속 특정 사례만을 다시 강조하면서, 그 제안건은 언제 시작(결정)해줄 것이냐고 자꾸 물어본다.—면 의심하고 여러모로 살펴야 한다.

- 조직에서 윗사람이 자리에 있을 때와 없을 때 행동이 크게 변하는 사람, 상위 리더와 논의한 내용들을 정규 정보공유를 통하지 않고 특별한 비밀인것인 마냥 (그런데 이상하게) 공공연히 떠드는 사람은 ‘사방’ 또는 ‘위세’로 발전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감사합니다.

Post filed under 사람과 책 이야기.

  • PEK

    관심깊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