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讀後感 이다. 요약본을 생각하신 분은 다른 곳을 찾아주시길)

Screenshot 2017-08-06 at 7.59.01 AM.png여러 해 전 아이에게 ‘저장하려면 디스켓 아이콘을 클릭해’ 라는 설명을 못 알아듣는 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꼈던 당혹감이 있다.

2000년대에 태어나 처음 부터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물론이거니와 1990년대에 태어난 거의~ 디지털-아날로그 반반 세대들에게도 3.5인치 플로피디스크는 아이콘으로나 보던 물건의 형태이지 실물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직관적으로 이해되라고 만든 아이콘이 이제는 학습의 대상이 되버린 것 같다.

학습을 해서 이해하게 되는 상징적인 아이콘 그림은 아마도 통화 버튼이거나 전화를 나타내는 아이콘일 것 같다. 여느 앱이나 명함에서는 여전히 ‘☎’ 를 이용해서 전화를 나타내거나, 아래 아이콘들과 같은 모양새를 많이 사용하는데, 특히나 2000년대 생들은 학습을 통해서 이것이 전화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배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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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전화’는 아닌데…

이런 상황을 조금 더 넓은 시간의 폭으로 바라보면, 과거의 LP레코드판이나 사진 필름들은 지금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입장에서는 매우 신선한 ‘새로움’일 수도 있다. 마치 ‘음악을 MP3가 아닌 플라스틱판에 새겨넣고 바늘로 재생해서 듣다니!’ 와 같은 충격 반 호기심 반과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사실들과 더불어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아날로그’ 물건들을 그리워하며 찾게되는 과정들을 살펴보며, 역시 사람은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을 ‘진짜’라고 느끼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싣은 책이 ‘아날로그의 반격’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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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서 ‘반격’이라고는 했지만, 이것은 종이 책 서점이 사라지고 모두 인터넷 서점을 이용할 것이라고 하거나, 오프라인 쇼핑몰들은 끝나가고 곧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대체될 것이라거나 하는 표현들에 대해 반박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반격’, ‘복수’등의 표현을 고른 것이지 실제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또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적정한 비중으로 공존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다만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디지털’이 대세이고 혁신을 이끄는 것이며, 그것에 편승하지 못하면 마치 도태될 것 처럼 겁을 주 듯 이야기 하는 것이 싫었을 뿐…)

어찌되었건, 아날로그의 가치가 보다 높게 평가되기 시작하는 것에는 아무래도 디지털이 요즘 매우 흔해진(?)것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 과거 아날로그 보다 디지털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되던 시절에는  - TV광고에서 ‘돼지털? 디지털!’ 이라고 말하며 반문하는 시장 아주머니가 등장하는 LG광고도 있었다 –  디지털은 접하기 힘든 것이으며 원터치로 무언가 자동으로 다 완성되고 우리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었고, 과거의 ‘아날로그’들은 그저 사람을 수고스럽게도 반복하게 만들고, 하나씩 하나씩 손으로 무언가 건드려줘야 일이 완성되는 그런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인터넷 보급률이 97%로 세계1위이지만 세계 인터넷보급률은 약 45%선인 것을 보면, 뭐 일반적으로 ‘디지털이 흔해졌다’라고 하기엔 아직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책의 저자를 포함하여 우리들 상당수는 이제 디지털이 흔한,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반대로 아날로그는 여전히 많은 노력과 관심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음악 하나를 듣더라도, 툭 스마트폰에서 자주듣던 즐겨찾기 선택된 노래를 터치하거나, 검색 한번에 원하는 다른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닌… LP레코드판이라면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가게에서 사온 것이었으며, 집에 줄 맞춰 꽂아 놓았고, 그 중에서 손가락으로 흩으며…무엇을 들을까? …그 다음은 레코드 재킷에서 레코드판을 정성스럽게 뺴어 먼지를 닦고, 턴 테이블 덮게를 열고 잘 놓은 후….(그 다음이 중요하다.) 레코드 바늘을 살짝 들어 바늘이나 레코드판이 상할라 사알짝 올려 놓던 – 그 일종의 리츄얼 – 경험이 음악을 듣는 우리들을 집중하게 하고, 그 음악 하나에 성의껏 듣는 자세를 갖게 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레코드판이 처음 플레이되기 직전 몇 초 정도의 거의 묵음 속에서 작게 들리는 ‘치지칙’ 소리다. 이 소리는 ‘이제 곧 음악이 나온다. 준비해~!’ 라는 신호다. 이 때 우리는 엄숙히 귀가 열리고 첫 시작음을 들을 준비가 된다.

혹자는 레코드LP판의 음색이 더 부드럽다거나, 음 재생이 더 좋다거나…뭐 이런 이야기도 있기는 한데, 사실은 감정적인 문제이고. 실제로는 최근의 음악 녹음과 재생기술이 더 음역대나 왜곡도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레코드판의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판매, 턴테이블이 다시 젊은이들에 의해 구매되는 것은 왜 일까?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는 필름 카메라나 우연의 개입이 많은 로모 카메라등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그리고 특히 하나하나 나의 손길과 나의 정성에 의해서만 무엇이 이루어지는 그 경험은 스스로의 나를 더욱 중요한 사람처럼 느끼게 해준다. 또 그 산출물인 사진, 음악을 듣는 경험을 더 값어치 있게 느끼게 해 준다.

물론 가성비로 보면 디지털이 훨씬 낫다. 번거롭게 굴지 않고, 많은 관심과 관리를 요구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날로그의 감성과 그 결과물들은 오히려 더 많은 ‘공 – input’을 들여야 가능하니, 거꾸로 가치가 더 올라가게 되는, 더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효율/효과 중심의 디지털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절차를 거쳐 리츄얼스러운 의식을 거쳐 내가 이것은 완성했거나 즐기고 있는가? 에 따라서 그 가치가 매겨지는 상황이 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이와 같은 상황들은 여러 곳, 여러 아이템에서 발견되고 있다.

레코드판의 예시는 물론이거니와, 종이에서도 그렇다.
디지털화면을 통해서 콘텐츠를 접하는 것이 아니라, 인쇄된 그 무엇은 더욱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실제 손에 만져지는 물건=값어치 있는 무엇’ 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전기가 없어도, 디지털 디바이스가 없어도 상시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는 의미가 더욱 크다. 마치 우리 사람이 전기와 인터넷이 없어도 살아 숨 쉬듯 말이다.

그래서 몰스킨 노트가 다시 부활하여 상장 후 디지털 서비스인 에버노트나, 어도비들과 협력을 하게되는 이야기. 여전히 명함은 종이 명함을 선호하는 이유. 필름 카메라와 로모그래피 의 성공 스토리를 온라인에서 빌려 인스타그램이 성공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 온라인 블로그가 아니라 잡지가 갖는 고유한 가치와 경쟁력에 대한 것. 애플은 왜 오프라인 매장에 정성을 들여 키우고 있는지? (마치 왜 아마존은 홀푸스를 인수했는지와 같이) 또 일, 학교, 교육, 선생님과 학생의 교류를 태블릿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을까? 실리콘밸리의 그들은 낮에는 코딩하고 왜 밤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듬뿍 묻어있는 수제맥주를 즐기는 것일까? 등등 많은 의문에서 시작하여 사실을 확인하고 ‘아날로그는 아직 살아있고 지금 반격 중이다’ 라고 이야기 한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을 도구로 꾸준히 경쟁력을 키워가지만, ‘우리의 몸이 아날로그’이듯 여전히 아날로그에 대한 감성과 가치만은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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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자동차 브로슈어에서 : 거봐 ~ 아날로그 감성 = 프리미엄 이라고…

이 둘은 서로 누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어느 선이 적정한 비율인가? 를 찾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된다.

이만 줄여야겠다.  자세한 사례들은 책 (아날로그의 반격 / 어크로스)을 참고하여 주시길…

PS: 개인적으로 ‘어크로스’의 책들을 좋아한다. 은근히 ‘아날로그’ 스러운 주제의 책들이 많다. / Joh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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