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비즈스프링 플랫폼사업부 김원주 과장이 월간 WEB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월간 WEB 2015년 5월호에서 칼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월간 WEB 편집본과 차이가 있습니다.
시작하며…
여러 기술이나 성능이 하나로 융합되거나 합쳐지는 일을 뜻하는 ‘컨버전스(convergence)’란 단어는 2004년도에 이르러서야 국립국어원의 ‘신어’자료집에 수록되었지만, 이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한참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18세기 초에 활동했던 영국인 과학자 William Derham이 그의 저술에서 ‘빛의 수렴(convergence)과 발산(divergence)’에 대해 언급했고, 그 이후 컨버전스란 용어는 생물학, 경제학, 정치학 등의 학문적 분야는 물론, 인터넷, 모바일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도 두루두루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컨버전스에 의해 만들어진 환경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으며,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식료품, 의약품, 생활용품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스마트폰을 통해 통화뿐만이 아니라 컴퓨터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각종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IT분야에서의 컨버전스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IOT(Internet Of Things)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파급력을 가진 채 확장되고 있다. 집, 가전제품, 자동차, 사무실 등 모든 것이 인터넷을 통해 하나로 융합되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기술과 환경의 융합에는 필연적으로 복잡성(complexity)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이로 인해 발생되는 비정상적이고 불필요한 현상과 비용을 최대한 제거해야 할 것인데, 이 중요한 역할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 필자는 바로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기획자가 생각하는 디자인
사실 필자는 디자인 전공도 아니며, 디자인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10년도 넘은 오래 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후 2년여간 웹디자이너로 활동한 것이 전부이며, 그나마 그것도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등의 그래픽 툴에 대한 단순한 하드스킬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 당시에는 디자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도 없었으며, 그러기에 ‘디자인은 결과물을 포장하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디자인을 천대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10여년을 웹분석가이자 기획자로 살아오는 동안 그 생각들이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온라인 비즈니스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회사 특성상 이런 웹서비스들에 대한 기획이 필자의 주 업무이다. 일반적인 기획업무의 프로세스와 마찬가지로 ‘분석 – 설계(기획) – 실행(디자인 및 코딩) – 수정 및 보완 – 결과물 – 평가’의 사이클 순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타겟 이용자의 니즈를 예측하고 경쟁사 및 시장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서비스의 기능과 UX를 설계하여 기획서로 만들어내고, 디자이너 및 개발자와의 기획서 기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다시 수정과 보완을 거쳐 완성버전을 만들어낸다. 하나의 서비스를 런칭하기 위해서는 실로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며, 수많은 업무 관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디자이너에게 요구하였던 부분은 순수 디자인 영역에서의 감성적인 미적 표현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디자인의 영역에 한계선을 그어 놓았던 것이다.
수 년간 많은 서비스를 런칭시키며 확인할 수 있었던 한 가지의 사실은, 실제 이용자들은 시각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표면적 모습을 통해 서비스의 가치를 인식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개발자로만 이루어진 스타트업 기업에서 기술적인 혁신만 일궈내면 그 기술을 찾는 이용자들이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를 갖는 것처럼, 서비스의 내적인 충실에만 최선을 다한다면 성공적인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었던 필자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이 하나 둘씩 증명되는 것이었다.
결국 디자인은 단순하게 제품 또는 서비스를 심미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기술적 노력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들에게 전달할 최종적인 가치를 표현하는 매개체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와 같은 1차원적인 시선에서 디자인 영역에 접근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인 것이다. 다홍치마 일 수 밖에 없는 내외부적 장치들을 설계해내고 만들어내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의 디자인에 요구되는 모습일 것이다.
컨버전스 시대의 디자인
서론에서 이야기한대로 컨버전스 시대에서는 이미 영역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디자인의 영역도 단순하며 구시대적인 디자이너로써의 역량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Data Scientist)라 불리는 마케터, 기획자, 기술자가 결합된 형태의 직무 군이 최근 들어 부각되면서 크게 주목 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디자이너의 영역도 디자인 외적인 스킬과 지식이 요구되어 업무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듯 하다. 바로 디자인 컨버전스가 필요한 때이다.
흔히 말하는 이성적 디자인과 감성적 디자인의 경계는 20세기 전후로 나뉜다. 20세기 이전의 디자인이 합리적 판단과 접근을 중시한 디자인이었다고 한다면, 21세기의 디자인은 실용성, 작품성, 편리성을 포함하고 있는 감성과 오감의 만족을 추구하는 형태의 디자인이라 하겠다. 혹자는 감성 디자인이 이미 디자인 컨버전스가 이루어진 형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더 필요한 한가지가 있는 듯 하다. 바로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빅데이터 시대에 걸맞는 ‘데이터’의 활용이다.
데이터 중심의 디자인 (Data-Driven Design)
데이터에 근거한 의사결정 및 업무 진행은 디자인 외적인 분야에서는 사실 일상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디자인 영역에서 의미하는 데이터 중심이라는 것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쉽지는 않다. 빅데이터 시대라고는 하지만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하거나 활용하는 자체에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디자인의 영역까지 데이터와 연결시켜 실무에서 활용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데이터 중심의 업무 스타일을 사내에 정착시키는 것이 차별화 요소가 될 수 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우선 디자인 중심의 ‘데이터’에 대해 가볍게 정리를 해보자. 데이터는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 정량적 데이터 :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와 같이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데이터
– 정성적 데이터 : 왜, 어떻게와 같이 수치로 표현하기 어려운 데이터
정량적 데이터는 구글 애널리틱스와 같은 분석 도구를 통하여 손쉽게 측정할 수 있다. 현재 시장에 나와있는 대부분의 분석 도구 역시 이러한 양적인 측면의 데이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정량적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디자인 개선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상품 페이지보다 Q&A게시판 페이지의 트래픽과 체류시간이 더 높다면, 우리는 상품 페이지의 UX디자인을 개선해야 한다고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숫자 데이터 만으로는 정말 웹사이트 이용자들이 상품 페이지의 네비게이션이나 구조 등 UI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체류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이렇듯 숫자 데이터가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데이터 중심의 디자인에서 ‘왜’나 ‘어떻게’의 데이터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왜’나 ‘어떻게’ 같은 부분에 대한 정성적 데이터는 측정하기에 가장 어려운 데이터 중에 하나이다. 직접적인 설문조사를 하지 않는 한 오차가 존재하는 범위 내에서 예측을 해야 한다. 예측으로 넘어가면 이것은 데이터 분석가의 영역이 되기도 한다. 데이터 분석가 들은 종종 다양한 정량적 데이터들을 다각도로 분해하고 조합하면서 이 ‘왜’에 대한 물음에 대해 추측 데이터를 산출해 내기도 한다. 이러한 가공 데이터는 분석가의 역량에 따라 오차 범위가 다르겠지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로 변모하기도 한다. 웹사이트 방문자들이 상품 페이지를 이탈하는지에 대해 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면 우리가 어떤 디자인적 개선을 이뤄내야 하는 지를 더욱 쉽게 알 수 있을 것일 테니 말이다.
데이터에 대한 오해
데이터 중심의 디자인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현업 디자이너들의 감각을 무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감각적인 사고방식이 실측 데이터보다 더 정확한 경우도 종종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케터의 이벤트에 대한 감각이 예측 데이터보다 더 정확하게 동작하며 MD의 상품에 대한 감각이 소비자의 취향에 더 적합한 상품 소싱을 이끌어 내는 것을 우리는 많이 경험해왔다. 다만 그러한 감각에 데이터가 더해진다면 더 높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컨버전스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될 수 있는 듯 하다. 그럼 데이터에 대해 우리가 잘못 오해하기 쉬운 몇 가지 사항을 간단하게 짚어보고 어떻게 해야 올바른 컨버전스를 이뤄낼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에 조금씩 접근해보도록 하겠다.
1. 데이터는 숫자로 존재하여야 한다.
수치화된 데이터는 그 어떤 근거자료보다 신뢰성을 얻기가 쉽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데이터 분석가에 의해 해석된 데이터의 형태는 수치가 아닌 타입으로 존재할 수 있다.
2.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좋다.
물론 빅데이터라 불릴 수 있을 만큼의 데이터를 다량으로 보유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나, 분석가가 없다거나 분석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 데이터를 해석해낼 수 없다면, 그 많은 양의 데이터는 시스템 리소스를 잡아먹는 짐이 될 지도 모른다.
3. 데이터는 관리자에게만 필요하다.
데이터는 의사결정을 위해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데이터 중심의 디자인이 아니던가. 디자이너 뿐만이 아닌 그 외 직무의 실무 현업 담당자 모두에게 데이터는 갈수록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4. 데이터가 혁신을 파괴한다.
실측된 데이터는 활용하는 사람의 것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과거의 답습이 될 수도 미래의 예측이 될 수도 있다. 과거 행동과 경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데이터를 활용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면 데이터가 결코 디자인 크리에이티브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을 것이다.
5. 디자인에 데이터를 활용하는 정석의 방법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데이터 활용 방법에 전문가들만이 알고 있는 공식 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분명히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쌓아온 경험과 감각과 지식에 의해 데이터의 가치가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항상 테스트하고 테스트하고 또 테스트하라.
마치며…
사실 컨버전스에 대한 이야기도,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도, 데이터에 대한 이야기도 어느 한가지 주제만으로 한 챕터를 가득 메울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겠으나 지면의 한계상 그것들을 묶어서 이야기하려다 보니 많은 부분들이 생략되어 버린 것 같다.
결국 중요한 것은 컨버전스 시대에서는 기술과 기능의 결합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식, 경험, 감각들도 같이 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융합의 세계에서 디자인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다양한 상품과 기능들을 단순명쾌하고 통일성을 느낄 수 있도록 사용자의 경험에 맞게 재구성하여 가치를 시각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 최전선의 영역이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드시 디자이너가 모든 영역들에 대해 지식을 쌓을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소통과 협업이라는 좋은 도구가 있기 때문이다. 아집과 독단의 벽을 허물고 직무의 경계를 넘어서서 큰 흐름을 바라보며, 경험과 감각과 사실을 결합시켜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될 때 데이터와 디자인의 컨버전스가 가지는 진정한 효과와 가치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