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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에디톨로지-를 읽고, 아직 기억나는 10개의 글귀들.

TV에서도 종종 보았지만, 언젠가 홀연히 일본으로 건너가 그림공부를 하는 학생으로 지냈던 김정운 교수가 새로 책을 냈다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항상 쉽고 재미있게 글을 쓰려는 접근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혹 누군가는 ‘금방 읽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고도 합니다.

읽은 지는 조금 시간이 지났습니다만,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들었던 책이기도 해서…그냥 읽는 중간중간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간추려 봅니다.

글의 파편들만 나열하니 ‘선문답’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글들이 화두처럼 느껴져 궁금한 점이 발견되시면, 기회를 내시어 한 번 읽어보세요.

1

“정보가 부족한 세상이 아니다. 정보는 넘쳐난다. 정보와 정보를 엮어 어떠한 지식을 편집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 세상이다. 편집의 시대에는 지식인이나 천재의 개념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많이, 그리고 정확히 아는 사람이 지식인이었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정보를 외우고 있으면 천재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지식인은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검색하면 다 나오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잘 엮어내는 사람’이다. 천재는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남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는 사람’이다.”

2

“인간이 가장 창의적일 때는 멍하니 있을 때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멍하니 있을 때, 생각은 아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가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할 때가 있다. 그러고는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거꾸로 짚어나간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생각의 흐름을 찾아냈을 때, 자신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날아다녔던 생각의 범위에 놀라게 된다. 보통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창조적인 순간이다. 
보통사람은 어쩌다 겪는 ‘날아가는 생각’이지만, 천재에게는 일상이다. 천재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생각이 마구 건너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무지 쫓아가기가 어렵다.”

3

“남의 이론을 많이,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편집할 수 있는 카드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실력이 있다’는 것은 편집할 수 있는 자료가 많다는 뜻이다. 이렇게 카드로 축적된, 편집 가능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database’라고 한다.”

4

“‘곰 한 마리가 A 지점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1킬로미터 걸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방향을 바꿔 동쪽으로 1킬로미터 간다. 그리고 거기서 또 다시 방향을 바꿔, 북쪽으로 1킬로미터 걸어갔다. 그랬더니 출발점인 A 지점에 다시 도착하게 되었다. 이 곰은 무슨 색일까?’ 
난센스 퀴즈가 아니다. 수학자 폴리아G. Polya가 진지하게 낸 문제다. 답은 ‘흰색의 북극곰’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곰의 색이 아니다. 남쪽으로 1킬로미터, 동쪽으로 1킬로미터, 북쪽으로 1킬로미터를 갔는데,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지구가 둥근 입체가 아니라 평면이라고 생각하는 맹점을 걸고넘어지는 문제다”

5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이 불안을 견디지 못해 인간은 ‘여기와 지금here and now’이라고 하는, 존재의 확인을 위한 좌표를 정하기 시작한다. 
시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시간을 ‘분절화’한다. 시간을 숫자로, 마치 셀 수 있는 물체처럼 만든 것이다. 일단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갠다. 하루는 모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된다. 그리고 365일이 모여 1년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1년이 매번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아니, 반복된다고 믿는 것이다. 반복되는 것은 하나도 안 무섭다.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한 해가 잘못되면 그 다음 해에 다시 잘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가 오는 것을 매번 그렇게 축하하며 반기는 것이다.”

6

“덧붙이자면, 사회적 경력·학력을 제외하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학력·경력 없이도 자신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깊은 자기성찰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명함을 내보이지 않고 자신을 얼마나 자세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서술할 수 있는가가 진정한 성공의 기준이다.”

7

“빌 게이츠의 이야기는 백 번 옳다. 훌륭하다. 그리고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도 안 재미있다는 거다. 별로 흥미롭지 않다. 안 들어도 다 아는 이야기 같다. 반면 기부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관해 어떠한 이야기도 한 적 없는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는 뭔가 감동이 있다. 울림이 크다. 듣고 싶어진다.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 
‘계몽’이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스스로 의미를 편집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 일방적으로 완성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재미없는 거다.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내러티브는 진리를 강요할 뿐, 일리一理의 해석학이 빠져 있다. 반면 스티브 잡스의 내러티브는 상호작용적이다. 편집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잡스의 정서적·모순적·자극적 내러티브는 듣는 이들의 적극적인 해석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가 갖는 의미를 주체적으로 편집해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낼 때만 의미 있다. 남이 만들어주는 의미는 전혀 의미 없다. 진리를 계몽하던 시대는 지났다. 듣는 이로 하여금 ‘주체적 편집의 기회’를 제공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8

“심리적 과정을 사회·문화적 과정과 역사적 경험의 내면화로 설명하려는 독일식 설명과는 달리, 미국식 심리학에서 전제하는 개인은 지극히 개별화된 주체다. 또한 이 개인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이뤄낼 수 있는 전능한 주체’다. 근대 독일식 ‘규제 사회’와는 구별되는 미국식 ‘성과 사회’에 지극히 잘 어울리는 주체다. 미국식 개인주의 심리학에서 극대화되는 후기 근대적 개인의 본질을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병철 교수는 ‘긍정성 과잉’으로 설명한다.” >> (피로사회/한병철 저 참고)

9

“서점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항상 줄지어 있는 자기계발서, 성공처세서의 핵심은 아주 단순하다.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는 속삭임이다. 여기에는 물론 또 다른 전제가 붙는다. ‘열심히 하면……’. 
아니 도대체 얼마나, 어디까지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인가. ‘넌 뭐든지 할 수 있어’는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와 같은 뜻이다.”

10

“자신 있는 사람은 이야기가 짧다. 좌우간 이야기든 책이든, 쓸데없이 길면 뭔가 의심해야 한다.”
음…좀 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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